1889년
미쓰이구미가 가미오카 광산의 모든 광업권 취득

1896년
진즈강 유역의 농업 피해가 신문보도 됨

1910년대 전후
- 1930년경
이타이이타이병 발생
진즈강 유역의 농업단체, 어업단체로부터 가미오카 광산에 대해 광독피해 소송
논 입구의 침전지에 대해 현이 보조금을 교부

1955년
8월
「이타이이타이병」이 처음 신문보도 됨
10월
「이타이이타이병」의 병명이 사용된 최초의 학회보고(제17회 일본 임상외과의사회)

1956년
2월
영양실조와 과중한 노동이 원인이라는 학설 발표(「임상영양」 9권 2호)

1957년
12월
광독이 원인이라는 학설 발표(제12회 도야마현 의학회)

1961년
6월
카드뮴이 원인이라는 학설 발표(제34회 일본 정형외과학회)
12월
도야마현 지방 특수병 대책위원회 설치

1966년
11월
이타이이타이병 대책협의회 결성
1967년
6월
후생성이 일본 공중위생협회 이타이이타이병 연구반에 연구 위탁
이타이이타이병 대책협의회가 가미오카 광산에서 보상 등의 교섭개시
7월
현이 진즈강 유역 주민의 건강실태조사를 개시
12월
이타이이타이병 환자 3명이 후생대신과 통상대신에게 구제를 진정
현이 독자적으로 처음 이타이이타이병 환자를 인정

1968년
1월
이타이이타이병 재판 변호단 결성
3월
1차 소송 제소 미쓰이 금속광업에 대해 손해배상 소송
이후, 1971년 7월에 걸쳐 7차(182건)제소
5월
후생성 견해 발표(이타이이타이병을 공해병으로 인정함)

1970년
2월
진즈강 유역이 공해로 인한 건강피해 구제에 관한 특별 조치법 대상 지역으로 지정
이후 법률에 준하여 이타이이타이병 환자 구제를 실시
재판소가 소송 구조를 결정

1971년
6월
1심 판결 환자측 승소, 미쓰이 금속광업측 항소

1972년
8월
2심 판결 환자측 전면 승소
피해자 주민과 미쓰이 금속광업 간에 「이타이이타이병의 배상에 관한 서약서」,「토양오염 문제에 관한 서약서」,「공해방지협정」 을 체결
11월
「공해방지협정」에 준하여 제1회 현장조사 실시
(주민 200명, 과학자 등 전문가 26명)

1977년
11월
농용지 토양오염 대책지역 1500.6 헥타르 지정 완료

1978년
2월
제1회 전문가 현장조사 실시

1979년
3월
현장조사에서 발전 용수로 내의 침투수에 의한 오염을 발견
4월
환경청(현 환경성)위탁사업에 의한 주민건강조사를 개시

1980년
2월
농용지 토양오염 대책계획(제1차 지구)를 책정하고, 공사 착수 이후, 1992년에 걸쳐 제3 지구까지 계획 책정하고, 공사 착수

1987년
8월
가미오카 광산에서 아연을 추출하고 남은 찌꺼기 처리 방법을 건식에서 습식으로 변경
농용지 토양오염 대책지역의 첫 지정 해제
이후, 2009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지정 해제를 실시

1997년
2월
산미유통 대책지역의 농용지 토양오염 대책계획을 책정

2001년
6월
가미오카 광산에서의 아연, 납 광석 채굴 중지

2009년
6월
현이 이타이이타이병 관계 자료 계승 검토회를 설치

2010년
2월
이타이이타이병 관계 자료 계승 검토회가 자료관의 설치나 그 사고 방식 등을 종합한 보고를 현에 제출
3월
현이 이타이이타이병 자료관 정비 기본 구상을 책정

2011년
6월
도야마현립 이타이이타이병 자료관 신설 공사에 착수

2012년
3월
대책지역의 토양 복원 완공
4월
도야마현립 이타이이타이병 자료관 오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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