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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규명, 건강과 생활을 지키는 움직임
공해병이 된 이타이이타이병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발표되었으나, 오랫동안 괴로워해 온 주민들은 가미오카 광산에서 배출된 카드뮴이 원인이라고 건강 피해의 해결을 요구하며 재판을 일으켰습니다. 재판은 일본 후생성(현 후생노동성)의 견해가 제시되기도 해서, 주민측이 승소하였고, 원인규명을 둘러싼 분쟁에 종지부가 찍혔습니다. 그 후 즉시, 주민측과 원인기업이 약정을 맺고, 환자 구제나 환경 복원을 향한 움직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원인규명, 건강과 생활을 지키는 움직임
미쓰이 금속 광업 주식회사 『가미오카 광업 사진집』
원인 구명, 건강과 생활을 지키는 움직임 공해병이 된 이타이이타이병 진즈강 유역의 주민을 괴롭혔던 원인불명의 병은 1955년에 「이타이이타이병」으로 신문에 소개되고, 또, 일본 임상 외과 학회에서 발표됨으로써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가나 현을 비롯한 많은 연구자가 그 원인을 밝혀내고자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원인 구명, 건강과 생활을 지키는 움직임 공해병이 된 이타이이타이병
원인에 관한 여러 가지 설 초기 연구에서는 「이타이이타이병」의 원인을 「과로」와 「영양실조」라고 하는 설이 중심이었습니다.

머지않아 가미오카 광산으로부터의 배출물에 원인이 있다고 하는 이른바 「광독설」이 발표되고, 1961년에는 광산에서 배출된 카드뮴이 원인이라고 하는 학설이 나왔습니다.


이타이이타이병과 카드뮴에 관한 학회발표를 전하는 신문기사
『기타닛폰신문』1961년 6월24일
획기적인 후생성 견해 1968년 후생성은 이타이이타이병이 카드뮴 만성 중독으로 발생하며, 이 카드뮴은 가미오카 광산에서 배출된 것 이외에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하는 견해(이른바 「후생성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정부가 공해로 인한 건강 피해 발생에 관하여 처음 공적으로 발표한 것으로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이타이이타이병은 공해라는 후생성 견해를 보도하는 신문기사 『기타닛폰신문』1968년 5월 9일
이타이이타이병은 공해라는 후생성 견해를 보도하는 신문기사
『기타닛폰신문』1968년 5월 9일
주민들의 결속 1966년, 피해자와 그 가족, 유족이 건강 피해의 해결과 구제를 요구하기 위해, 「이타이이타이병 대책 협의회」를 결성. 주민들이 단결해 가미오카 광산에서 조업하는 미쓰이 금속광업에 대한 보상 요구나 국가, 현에 대한 구제 진정 등의 운동을 실시했습니다.
주민들의 결속
주민들이 쟁취한 재판 1968년 미쓰이 금속광업을 상대로 재판을 일으켜, 1971년의 1심에서 전국의 공해병 관계 재판 중에 최초로 주민측 승소 판결을 받았습니다. 또한, 2심에서도 1972년에 주민측이 승소했습니다. 이 재판은 피해자의 참가율이 높고, 원고수가 도합 506명에 달하는, 당시 일본 재판사상 예가 없는 대규모의 것이었습니다.
재판의 쟁점 재판에서는 이타이이타이병과 가미오카 광산이 배출한 카드뮴의 인과관계가 최대 쟁점이 되었습니다.

주민 측은 이타이이타이병의 발생 장소와 시간이 한정되어 있는 것, 또한, 발생 지역이 산업피해 지역과 일치하고 있는 것 등을 근거로 광독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편, 미쓰이 금속광업 측은 카드뮴으로 인한 인체에 대한 영향과 그 구조가 해명되지 않으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 분쟁하였습니다.
재판의 쟁점
재판의 쟁점
주민과 원인 기업의 약정 주민측이 승소한 2심 판결 다음날, 주민측은 미쓰이 금속광업 본사로 가 직접 교섭을 한 결과, 피해자 배상 외에 공해방지와 오염토양 복원에 관한 3 개의 협정서·서약서를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공해 방지 협정은 주민에 의한 가미오카 광산 현장 조사를 기업측이 받아들이는 등 획기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아름다운 진즈강을 되찾는 큰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
진즈강과 가미오카 광산 가미오카 광산은 진즈강 상류의 도야마현과 기후현의 현 경계 가까이, 북 알프스에 수원을 둔 다카하라강 (도야마현에 들어와 진즈강이 됨)의 오른쪽 기슭에 위치하며, 주로 아연이나 납 등을 산출하는 광산입니다. 그 역사는 오래되었으며, 8세기부터 채굴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1874년 이후에는 미쓰이구미 (후의 미쓰이 금속광업)가 경영하게 되어, 일본 근대사를 뒷받침하는 아연·납 자원의 일대 공급지가 되어갔습니다.
아연 생산과 카드뮴 카드뮴은 자연계에 널리 존재하는 중금속으로 아연 광석 등에 비교적 높은 농도로 함유되어 있습니다.

아연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광산의 갱내수, 제련소와 폐석 등의 체적장에서 나오는 배수에 카드뮴이 함유되어 있었습니다.

가미오카 광산의 생산 확대 1870년대 이후, 광물에서 아연을 추출하는 기술이 진보하고, 전쟁 (러일 전쟁, 태평양 전쟁 등)을 계기로 늘어난 군수에 부응하기 위해 광석이 대량으로 채굴되고, 아연 생산이 확대되어 갔습니다.
현재의 가미오카 광산 아연과 연에 관해서는 2001년부터 광석 채굴을 중지하고, 아연은 수입한 광석을, 연은 자동차의 폐배터리를 원료로 제련하고 있습니다. 그 외,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에 포함된 귀금속(금과 은)의 리사이클도 시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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